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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로봇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 성남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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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 왜 지금이 위험한가?
-김영욱 (본지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열고 비수도권 첨단산업 투자 청사진을 공개했다. 삼성그룹은 향후 10년간 1000조원 규모의 투자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SK그룹도 비슷한 규모면 양대 그룹 합쳐 2000조원에 달할 수 있는데, 이 중 제2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는 호남권 투자 규모만 100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번 투자계획은 우리나라 GDP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역대 최대 규모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은 그럴듯하다. 서남해안은 발전에서 장기 소외된 탓에 역설적으로 반도체와 같은 첨단공장을 지을 수 있는 광활하고 안정된 가용토지가 남아 있다는 게 정부 논리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이 발표가 나온 바로 한주 전, 코스피는 정반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코스피가 한 주 동안 두 번이나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고, 한 주간 7.08% 하락했는데, 반도체 대형주로 투자심리가 쏠린 상황에서 AI 거품 우려가 재차 부각되며 하락 변동성이 확대된 모습이다.
정부와 삼성·SK는 메모리 슈퍼사이클의 정점 근처에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캐파 증설을 결정하고 있다.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합쳐 최대 반도체 팹 10기 규모가 될 경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SK하이닉스 4기)와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삼성전자 6기)을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이 된다. 신규 팹이 본격 가동될 시점과, AI 수요가 꺾이는 시점이 겹친다면 어떻게 될까. 수요는 줄고 공급은 늘어나는 최악의 다운사이클을 국가 차원에서 자초하는 꼴이 될 수 있다.
시트리니 보고서와 코리 닥터로우의 AI 거품론
이런 우려가 근거 없는 게 아니라는 건 해외 리서치와 비평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의 매크로 리서치 채널 시트리니(Citrini Research)는 "2028년 글로벌 지능 위기"라는 시나리오 보고서를 냈다. 핵심은 역설이다. AI가 예상보다 더 잘 작동해서 고소득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할수록, 그게 오히려 경제에는 악재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 노동의 가치가 무너지면 소비가 절벽처럼 꺾이고, 기업 실적이 악화되며 추가 감원이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이 충격이 사모대출·생명보험사·재보험사로 전이되면서, 평범한 가계의 연금·보험 자산까지 흔드는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다.
SF 작가이자 기술비평가 코리 닥터로우는 정반대 방향에서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AI 자체가 너무 잘 작동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거품이라 터질 거라고 본다. 그가 한 강연에서 학생의 질문에 동의하며 한 말이 핵심이다. 미국 증시 전체 가치의 3분의 1이 명확한 수익화 경로 없는 일곱 개 AI 기업에 묶여 있고, 이 거품이 터지면 경제 전체를 끌고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AI 기업들이 서로 1000억 달러 단위의 투자·계약을 주고받으며 매출처럼 보이게 하는 구조를, 닷컴버블 때 통신사들이 트래픽을 서로 사고팔며 매출을 부풀렸던 것에 비유한다. 닥터로우의 처방은 명확하다. 사회·경제적 부채가 더 쌓이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 이 버블을 터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M7, 미국 증시의 3분의 1을 떠받치는 위태로운 롤러코스트
이 거품론이 단순한 비관론이 아닌 이유는 숫자가 받쳐주기 때문이다. 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아마존·메타·엔비디아·테슬라, 이른바 매그니피센트 7이 미국 증시 전체 가치의 3분의 1을 차지하는데, 이들 다수가 명확한 수익화 경로 없이 AI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미국 경제 전체가 일곱 개 기업의 AI 투자 서사 하나에 의존하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엔비디아가 AI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그 돈이 다시 엔비디아 GPU 구매로 돌아오고, 클라우드 업체들 사이의 초대형 컴퓨팅 사용계약이 서로 얽히는 순환출자 구조가 비판의 핵심이다. 같은 돈이 몇몇 회사 사이를 빙빙 돌면서 매출처럼 보이는 회계상의 신기루라는 지적이다. 미국 경제학자 허버트 스타인이 남긴 말,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은 결국 멈추게 마련이다"가 정확히 이 구조를 가리킨다. 문제는 언제 멈추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멈추느냐다. 스스로 통제된 방식으로 연착륙시킬 것인가, 시스템이 강제로 경착륙시킬 것인가.
메모리 한 우물 대신, 실질 경쟁력 있는 신산업에
한국 메모리 반도체는 GPU나 AI 모델 자체에 베팅한 게 아니라 'AI가 쓰는 인프라'라는 한 단계 아래 레이어에 있다. 그래서 거품이 꺼져도 닷컴버블 때의 광케이블처럼 결국 쓰이는 인프라로 남을 가능성은 있다. 다만 단기·중기로는 가동률 저하와 가격 충격을 피할 수 없다. HBM 수요가 빅테크의 capex에 전적으로 연동돼 있는 한, 메모리는 AI 거품의 진폭을 그대로 흡수하는 충격완화재 역할을 떠안게 된다.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를 들여다보면, 호남권에는 반도체, AI 데이터센터는 충청 및 강원에, 우주항공과 로봇을 아우르는 피지컬 AI 벨트는 영남권에 배치한다지만, 이것도 결국 'AI'라는 한 테마 안에서의 지역적 분산일 뿐이지 산업 자체의 다각화는 아니다. 메모리 의존도를 줄이는 진짜 신산업 — 로봇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차세대 2차전지, 우주, 바이오 — 으로의 자본 배분은 이번 발표에서 여전히 작다.
지금 필요한 건 메모리 캐파를 더 쌓는 게 아니라, AI 거품이 꺼졌을 때도 살아남을 산업 포트폴리오를 짜는 일이다. 실물 경쟁력을 만드는 신산업에 자본과 인력을 분산시켜야, 다음 다운사이클이 와도 국가 경제가 메모리 가격 하나에 휘둘리지 않는다. 시트리니가 경고한 악순환도, 닥터로우가 경고한 거품 붕괴도, 결국 한 가지 처방으로 모인다.
"한 산업, 한 기둥에 너무 많은 것을 걸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