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주의 한 병원에서 27살 간호사가 3년 가까이 '태움'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다. 그는 퇴사 후 고용노동부에 진정을 냈고 괴롭힘 사실을 일부 인정받았다. 그가 가해자로 지목한 세 명 중 병원이 괴롭힘을 인정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고, 병원이 내린 징계는 그 한 명에 대한 '훈계'가 전부였다. 가해자들은 모두 그대로 병원에 남아 일했고, 그 사실을 접한 그는 얼마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 타임라인
2023년 — 경기 광주 소재 병원 입사, 간호사 근무 시작
입사 직후~2025년 4월 — 선배 간호사들로부터 '태움' 괴롭힘(폭언, 모욕, 따돌림 등) 지속
2025년 4월 — 병원 퇴사
퇴사 후 —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 진정 제기
조사 결과 — 가해자 3명 지목, 이 중 1명의 괴롭힘만 인정
병원 조치 — 인정된 가해자 1명에게 '훈계' 처분, 가해자 전원 병원 근무 유지 / 병원 측은 "부서 이동 제안했으나 피해자가 원치 않았다"고 해명
2026년 7월 초 — 자택에서 사망
2026년 6월 29일 — MBC 뉴스데스크 보도로 사건 알려짐
2026년 7월 1일 — 이재명 대통령, 해당 병원 근로감독·유사 의료기관 불시 기획감독 지시 / 고용노동부, 근로감독 착수
2026년 7월 2일 — 대한간호협회, 입장문 발표(인력 부족·업무 부담이 근본 원인)
2026년 7월 3일 — 추미애 경기도지사,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 전면 실태조사 지시
이후 — 경기남부경찰청, 20명 규모 전담수사팀 편성해 내사 착수
2023년 경기 광주 소재 병원에 입사해 간호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입사 직후부터 2025년 4월 퇴사할 때까지 선배 간호사들로부터 폭언과 모욕, 따돌림 등 태움 괴롭힘을 겪었다. 퇴사 후 고용노동부에 직장 내 괴롭힘 진정을 냈고, 조사 결과 가해자로 지목한 3명 중 1명의 괴롭힘만 인정됐다. 병원은 인정된 가해자 1명에게 '훈계' 처분을 내렸고 가해자 전원은 그대로 병원에서 근무를 이어갔다. 병원 측은 부서 이동을 제안했으나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2026년 7월 초 그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6월 29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로 사건이 알려지자 7월 1일 이재명 대통령이 해당 병원 근로감독과 유사 위험 의료기관에 대한 불시 기획감독을 지시했고 고용노동부도 근로감독에 착수했다. 7월 2일 대한간호협회가 인력 부족과 업무 부담을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는 입장문을 냈고, 7월 3일에는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에 대한 전면 실태조사를 지시했다. 이후 경기남부경찰청은 20명 규모의 전담수사팀을 편성해 내사에 착수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태움은 교육이 아니라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이라며 경기도의료원 산하 6개 병원 전면 실태조사와 지방노동감독관 조직 구축을 지시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해당 병원 근로감독과 유사 위험 의료기관에 대한 불시 기획감독을 지시했다. 정부와 지자체가 잇따라 대책을 내놓는 배경에는 태움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 있다. 2018년에도 태움으로 인한 간호사들의 죽음이 잇따랐고, 그때도 정부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8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사람이 죽는다. 왜 이 문제는 반복되는가.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은어로,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를 교육한다는 명목 아래 폭언과 따돌림, 모욕으로 길들이는 병원 내 악습을 가리킨다. 전문가들이 지목하는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모인다.
첫째는 병원 조직의 폐쇄성과 위계문화다. 간호 조직은 연차와 서열이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동하는 수직적 구조를 갖고 있고, 상급자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하급자에게 그대로 내려보내는 '내리갈굼'의 연쇄가 구조적으로 반복된다. 둘째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과도한 업무 부담이다.
대한간호협회는 이번 사건에 대한 입장문에서 태움 문화의 근본 원인으로 만성적인 간호인력 부족과 과도한 업무 부담을 지목하며, 간호사 1인당 담당 환자 수에 대한 법적 기준 마련 없이는 같은 문제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셋째는 폭언과 모욕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는 문화다. 신입 간호사가 짧은 기간 안에 숙련도를 끌어올려야 하는 구조에서, 인격 모욕이 교육으로 포장되는 순간 피해자는 문제 제기 자체를 하기 어려운 위치에 놓인다.
통계로 보는 태움의 현실
대한간호협회가 전국 의료기관 간호사 78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최근 1년 내 인권침해를 경험했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피해 유형은 폭언과 직장 내 괴롭힘, 갑질이 다수였고 가해자로는 선임 간호사와 의사, 환자와 보호자가 함께 지목됐다. 신입 간호사 이직률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1~3년차 신입 간호사의 이직률이 66%를 넘는다는 통계가 있고, 태움은 이 이직률에 상당 부분 기여하는 요인으로 꾸준히 지목된다. 태움 문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에서도 신입 간호사의 60%가 동료 간호사의 괴롭힘으로 6개월 안에 퇴직한다는 조사가 있다. 다만 미국은 하급자에게 인격 모욕을 당했을 경우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한국 출신 의료인을 채용하지 않는 병원까지 생겼다는 사례도 나온다. 이는 역설적으로 처벌과 구제가 실효적으로 작동할 때 조직 문화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훈계로 끝난 징계, 솜방망이 처벌의 구조
이번 사건에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은 대목은 병원의 징계 수위다. 세 명의 가해자 중 한 명만 괴롭힘을 인정받았고, 그에게 내려진 조치는 '훈계'였다. 병원은 부서 이동을 제안했지만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별다른 추가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가해자들이 아무 불이익 없이 그대로 병원에 남아 일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피해자의 처지를 생각하면, 이 사건은 제도가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 전형적인 사례로 남는다.
이 지점에서 짚어야 할 것은 이것이 이 병원만의 예외적인 실패가 아니라 현행법의 구조적 한계라는 사실이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2는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 행위로 규정하고, 제76조의3은 사용자에게 신고 접수 시 조사 의무와 피해자 보호조치 의무를 부과한다. 그러나 이 조항들은 어디까지나 사용자의 '의무'를 규정한 것이고, 가해자 개인의 괴롭힘 행위 자체를 형사처벌하는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상 형사처벌이 적용되는 경우는 사용자가 신고자나 피해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했을 때, 혹은 사용자 자신이 괴롭힘 가해자인데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로 한정된다. 즉 태움을 저지른 선배 간호사 개인을 근로기준법으로 직접 형사처벌할 방법은 없고, 그 처리는 병원 내부 징계에 맡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병원이 솜방망이 징계를 내려도 이를 강제로 뒤집을 법적 장치가 마땅치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해자를 형사처벌하려면 결국 형법상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협박죄, 강요죄 등 별도의 죄명으로 고소해야 한다. 그런데 모욕죄는 제3자가 있는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공연성이 인정돼야 하고, 명예훼손죄는 구체적 사실의 적시가 있어야 하며 상당수가 반의사불벌죄로 분류돼 피해자가 합의하면 처벌이 무산된다. 폭언과 반복적인 모욕, 업무 배제처럼 신체적 폭력이 아닌 방식으로 이뤄지는 태움의 특성상 이런 형법 조항의 요건을 충족시키기도 쉽지 않고, 충족되더라도 실제 선고되는 형량은 대부분 벌금형에 그친다. 신체에 상처를 남기는 폭행이었다면 명백한 범죄로 다뤄질 사안이, 언어와 배제로 이뤄졌다는 이유만으로 조직 내부의 '교육'이나 '갈등'으로 축소되는 구조가 여기서 만들어진다.
여기에 더해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규정은 상시근로자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각지대가 있다. 또한 직장 내 성희롱과 달리 직장 내 괴롭힘에는 예방교육 등 사전조치 의무가 법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사용자가 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을 하든 안 하든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회가 형사처벌 조항 신설을 주저하는 배경에는 모욕죄와 명예훼손죄 자체를 표현의 자유 침해로 보고 폐지하자는 목소리도 있어, 태움 같은 언어적 괴롭힘에 새로운 형사처벌 조항을 넣는 일이 정치적으로 부담스럽다는 사정도 있다.
예방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와 지자체가 내놓는 대책은 대부분 실태조사와 예방교육, 인력 충원 쪽에 집중돼 있다. 대한간호협회도 인권침해 예방 교육 확대와 교육전담간호사 제도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인력 부족이 태움의 근본 원인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이런 대책의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예방교육은 이미 태움이 벌어진 조직에서 가해자에게 아무런 불이익이 없다는 사실 자체를 바꾸지는 못한다. 강수빈씨 사건에서 보듯, 문제는 예방교육이 없었다는 것보다는 괴롭힘이 확인된 뒤에도 가해자가 아무 불이익 없이 계속 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예방 중심의 대책만으로는 이미 벌어진 괴롭힘에 대한 처벌의 공백을 채울 수 없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 방향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먼저 반복적이고 중대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 안에 직접적인 형사처벌 조항을 신설하는 논의가 필요하다. 신체적 폭력이 아니라는 이유로 처벌 수위가 자동으로 낮아지는 구조를 그대로 두면, 언어와 배제를 통한 괴롭힘은 계속해서 처벌의 사각지대에 남는다. 둘째로 병원 내부 조사와 징계에만 맡기는 현재 방식에서 벗어나 외부 기관이 참여하는 독립적 조사 체계를 의무화해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조직 안에 있는 상황에서 조직 스스로 조사와 징계를 맡기면 지금처럼 '훈계'에 그치는 결론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셋째로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규정을 재검토하고, 성희롱 예방교육처럼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을 법적 의무로 명문화해야 한다.
태움으로 사람이 목숨을 끊은 사건이 벌써 몇 차례째인데도 매번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사건이 알려지면 정부와 지자체가 실태조사와 근로감독을 지시하고, 여론이 가라앉으면 다시 조용해진다. 이번에도 실태조사와 근로감독에서 끝난다면, 또 다른 신입 간호사가 같은 방식으로 위험에 놓이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언어폭력이라는 이유로 가벼워지는 처벌의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태움은 이름만 바뀐 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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