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 김영욱기자 2026.08.26.13:30]
용산 미군기지 반환 부지의 용도를 놓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정부가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다. 오 시장은 "용산공원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며 타협 불가를 선언했고, 정부는 훼손된 일부 구역에 청년·신혼부부용 공공주택 1~2만호를 짓겠다는 계획을 밀어붙이는 중이다. 그런데 이 논쟁에는 공원이든 주택이든 누구도 건너뛸 수 없는 전제조건이 빠져 있다. 바로 이 땅에 켜켜이 쌓인 오염을 걷어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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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덕 국토부장관과 오세훈 시장이 대화 전에 악수하고 있다. @사진제공 국토부 © 성남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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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 없다"는 오세훈, "제한적 공급"이라는 정부
오세훈 시장은 지난 8월 19일 "(용산공원 활용에 대해) 타협의 여지가 조금도 없다"며 "어떤 일이 있더라도 용산공원만큼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못 박았다. 정부의 주택공급 후보지 제시에 대해서는 "집값을 잡지 못한 책임을 용산공원으로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정면 비판했다. 대신 그는 서울의 확실한 공급 대안으로 재개발·재건축을 꼽으며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민간 정비사업 용적률 규제, 재개발 임대주택 비중 등 사업 속도를 가로막는 핵심 규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국토교통부)는 공원 전체를 개발하겠다는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장교 숙소, 군인아파트, 옛 방위사업청 부지 등 "녹지 기능이 상실된" 구역, 특히 공원 면적의 10분의 1인 어린이정원 부지를 활용해 1~2만호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이를 "사실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용산공원 부지 자체가 원래 군사용지로 이미 콘크리트로 포장돼 있었다고 반박하고 공원 주변 국유지 활용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치적 대립 뒤에 가려진 공통의 걸림돌, 오염토
그러나 이 공방에서 수면 아래의 사실이 있다. 용산 부지는 공원으로 조성하든 주택을 짓든, 그 전에 먼저 오염된 땅을 걷어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지금까지의 선례를 볼 때 결코 빠르지도, 간단하지도 않다.
오세훈 시장 스스로도 이 문제를 짚었다. 그는 지난 8월 18일 캠프킴 부지를 예로 들며 "오염토 정화 작업이 벌써 5년째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20년 반환이 발표된 캠프킴은 6년이 지난 지금도 정화가 끝나지 않은 상태다. 용산공원 전체를 대상으로 한 토양 조사와 정화에는 7~10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천 캠프마켓의 경우 구역별로 5~8년이 걸렸고, 춘천 캠프페이지는 1차 정화 후 추가 오염이 발견돼 4년을 더 써야 했다. 용산 부지는 반환 구역만 63만㎡, 어린이정원만 30만㎡로 기존 반환기지보다 규모가 훨씬 커서, 정화 기간이 이보다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염의 실체도 가볍지 않다. 1990~2015년 사이 기지 내에서 기름 유출사고가 84건(환경단체 집계로는 90건 이상) 발생했고, 2020년에는 기지 주변 지하수에서 벤젠이 기준치의 1,423배 초과 검출된 바 있다. 어린이정원 스포츠필드에서는 석유계총탄화수소가 기준치 36배, 장군숙소 구역에서는 29.3배 초과가 확인됐는데도 윤석열 정부는 2023년 이곳을 개방했고, 2024년 말에는 예약 절차까지 없애며 전면 개방으로 전환했다. "짧은 방문은 위해성이 없다"는 게 정부 설명이었지만, 오염을 다 걷어내지 못한 채 이용부터 시작한 이 선례는 앞으로 지어질 공원이든 주택이든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돼서는 안 될 사례로 남는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화 권한과 책임 소재다. 한국 정부가 정화할 수 있는 범위는 기지 '외부'로 유출된 오염에 한정된다. 기지 '내부'의 근본 오염은 SOFA 4조상 원상복구 의무를 둘러싼 한미 간 이견 때문에 미국의 협조 없이는 손을 댈 수 없는 영역이다. 이 문제는 2007년 국회 청문회에서 이미 지적됐지만 20년 가까이 풀리지 않았고, 그 결과 반환된 캠프킴 한 곳 정화에만 197억원이 들어가는 등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한국 정부, 결국 국민 몫으로 돌아왔다. 환경단체는 용산기지 전체를 제대로 정화하려면 1조원 이상이 들 수 있다고 본다.
설계도 다툼보다, 지반부터 다져야
공원이냐 공공주택이냐는 결국 이 땅 위에 무엇을 지을지의 문제다. 그런데 집을 짓기 전에는 설계도보다 먼저 지반이 안전한지부터 다지는 법이다. 그 위에 무엇을 올릴지를 놓고 다투기 전에, 정작 딛고 설 땅 자체가 안전하다고 확인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공방은 순서가 뒤바뀐 셈이다. 정부가 공공주택 계획을 밀어붙이려면 어느 구역이 얼마나 오염됐고 언제까지 정화가 끝나는지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과 재원 계획부터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오세훈 시장 역시 공원 보존을 주장하려면, 정화가 끝나지 않은 땅을 그대로 공원으로 개방하는 일이 어린이정원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겠다는 답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
공원이든 공공주택이든, 이 땅에 사람이 발을 딛고 살거나 뛰어놀게 하려면 오염 정화가 먼저다. 용도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길어질수록, 정작 가장 시급한 과제인 '오염된 땅을 안전하게 만드는 일'은 뒷전으로 밀려날 위험이 크다.
출발은 결국 SOFA 4조 개정부터...
그리고 이 모든 논의의 밑바탕에는 결국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4조 개정이라는, 20년 가까이 미뤄온 숙제가 놓여 있다. 한국 정부가 정화할 수 있는 범위가 기지 '외부' 유출분에 그치고, 기지 '내부'의 근본 오염은 미국의 원상복구 의무 자체를 부정하는 SOFA 4조 해석에 막혀 손을 못 대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용산은 물론 앞으로 반환될 다른 미군기지에서도 같은 논란과 비용 떠넘기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2007년 국회 청문회 당시 이미 "SOFA 4조를 개정하지 않으면 반환기지 환경치유 논란은 계속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정부는 그동안 "개정을 미국에 강요할 수 없다"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해왔다. 공원이냐 공공주택이냐를 둘러싼 지금의 공방을 다음 반환 부지에서 또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정치권과 정부가 이번 기회에 SOFA 4조 개정을 위한 실질적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